사표가 수리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상자를 내려다보았다. 갈색 상자에는 얼마 되지도 않는 서류와 개인용품이 초라하게 구겨져 있었다. 한때 여기에 든 것이 삶의 전부이자 목표였다.
간신히 정신을 붙잡아 나가는 길에 탈의실에 들러 캐비닛에 제복을 넣고 왔다. 문을 닫기 무섭게 빳빳하게 다림질된 옷을 보고 담당자가 혀를 찼다. 칼리는 몇 걸음만에 경찰청을 빠져나왔다. 이 걸음을 떼는 데 몇 년이 걸렸던가.
막을 수 있었던 사고였다. 숱하게 경고받았다. 그러나 간발의 차로 사건은 벌어졌고 한 가족은 세상에서 영영 사라졌다. 전소된 주택이 도심가 한켠에 우뚝 남아 그날의 끔찍한 상황을 플래시백처럼 재현할 뿐이다.
일가족의 끔찍한 사망은 단 두줄로 요약되었다. 그들의 성은 스미스이며, 두 자녀의 이름은 애비게일과 해나였다. 부부는 결혼생활 내내 서로를 존중하였다. 불이 피어오르던 시점 반려견 트루디는 도그워커가 산책시키고 있었다. 이제는 가족을 잃어 보호소로 옮겨졌다. 죽음은 전염병처럼 다른 이의 삶도 연이어 망가뜨린다. 그러므로 누구의 삶도 그렇게 간단하게 적어내선 안 되었다. 이것은 살인이니까.
하지만 공간과 재화의 한계, 공적 임무가 맞물리면 사람들을 데이터로 보게 되었다. 모두를 개별적인 존재로 인지하고 느끼는 슬픔과 모두를 배제하여 외따로 있는 것 중에 어느 것을 택해야 하는 것일까. 오랫동안 고민한 문제에 내린 답은 사표였다. 그는 어제 트루디의 입양신청서를 썼다.
아직도 그날처럼 빠르게 뛰지는 못할 것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구조원들의 만류를 무시하고 불길이 퍼진 저택에 뛰어들었을 때? 장난전화로 오인하고 넘기던 동료 옆에서 담배를 피웠을 때? 디온과 카라멜이 분명 새로운 방화사건이 터질 거라며 강력하게 수사를 요청할 때?
마음 속 어떤 예감을 듣는다. 아니, 시작부터 잘못됐어.
분명한 건 그는 경찰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유년기. 부모의 사망이 단순 사고가 아닌 살인사건으로 바뀔 때부터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 경찰들의 치열한 수사 끝에 마침내 범인을 법정에 올렸다. 그 뒤 기묘한 감명 따위에 젖는 바람에... ...
그는 비틀거리며 아무 방향으로 걸었다. 품에 든 상자가 버스럭거렸다. 하나 둘 물건이 쏟기며 바닥에 흩어진다. 줍지 않고 앞을 보고 걸어간다. 때로는 도로일 수도 있다. 클락션 소리가 횡단보도를 가로지른다. 우버는 여전히 오지 않았다. 사건 이후 차는 집 주차장에 세워둔 지 한참이었다.
그는 이제 어디든지 가도 된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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